25사단통신대대로 보내는 편지 93번째
아들
오늘은 아침에 편지를 한통 보냈는데
저녁에 또 편지를 쓰게 되네.
월요일엔 대학로에서 강의도 있는데
오늘은 쉬기로 했어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온 것 같은데
벌써 여름으로 가는 듯 날씨가 많이덥다
그간 겨울도 아닌 것이 봄도 아닌 것 같아
옷 입기가 참 불편했는데
오늘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근을 했어
따스한 봄은 우리 곁으로 참 더디게 찾아온다.
아들도 이젠 내의를 벗었겠지?
변덕스런 날씨로 금년겨울은 참도 길었어.
아빠는 오늘 일찍 일과를 마치고 농장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목이지난해와 다르게 주말농장도 많이 생기고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 소리가 요란하던데
이맘때가 되면 볍씨 싹을 틔우고 못자리 준비로
농군들의 손길은 바쁜 철이기도 하지.
아빠도 작은 주말농장에 심어놓은 야채에 물도 주고
주변에 잡초도 좀 뽑아내고 올해 처음 심은 삼채도
이제 막 촉을 틔어 파릇파릇 잘 올라오고 있고.
가지도 토마토도 잘 자라고 있더라.
저녁 식탁에 올려놓을 상추와 치커리 심어놓은 야채를
조금씩 뜯어 저녁에 삼겹살로 식사를 할까 했는데
누나는 누나대로 바쁘고 엄마도 늦는다기에
아빠혼자 올해 처음 수확한 야채로 혼자서 쌈밥을
푸짐하게 차려먹고 혼자 노닐다.
요즘은 드라마도 즐겨 보는게 없고 뉴스위주로 보다
아들 에게 또 몇 자 글적여 본다.
밤 11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인데
아들은 오늘의 하루도 시간만 떼우는 하루가 아니라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으리라 믿어.
불침번이 몇 시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곤한 밤 잘 이루고 밝은 아침 새로운 희망을 안고
힘차고 알찬 하루하루로 남은시간도 보람 된 생활이길 바래
군 생활도 우리만의 특권이기도 하지 소중한 시간이기에
지난시간들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도 생각을 해보고
나만의 인생 계획을 조용하게 세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
사실 입대 전엔 아들과 이렇게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기 보다.
부자지간에 따듯하게 대화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지 못했었지
그간엔 그냥 아빠의 일방적인 지시였었지
아들을 군에 보내놓고는 아빠의 생각을 전하고 .
아들의 생각을 들으며 조금은 소통의 시간도 가지게 되었고
나와의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단지 다름 이다 는 것도 느끼고
아빠도 아들 덕분에 인생 공부도 하게 되었어
오늘이란시간은 내일의 과거이지만
시간은 가고 또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 록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는 것
그러기에 젊은 날 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독수리와 같은 큰 날개를 펴고 두려움 없이
푸른 창공 을 향해 아들의 꿈을 힘차게 펼쳐 나가길 바란다.
알겠습니까? 박 상병.
2013년5월6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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